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니발 바르카 (문단 편집) == 여담 == * 한니발의 이름에 마치 성씨처럼 따라붙는 '바르카(페니키아어 𐤁𐤓𐤒, BRQ)'는 성씨가 아니고, 가문명도 아니다. 고대 카르타고인들은 성씨를 쓰지 않았으며, 동명이인을 구분해야 할 때는 주로 별명이나 부칭을 붙여서 구분했다. 바르카는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하밀카르]]의 별명이었는데, 페니키아어로 [[번개]]라는 뜻이며 전쟁에서 번개처럼 빠르고 매섭게 공격한다는 뜻으로 얻은 것이다. 이후 하밀카르의 아들들인 한니발, [[하스드루발 바르카|하스드루발]], [[마고 바르카|마고]]가 하밀카르의 이베리아 정복지를 기반으로 군권을 차지하고 정치세력화했는데, 셋 다 당시 카르타고 귀족들 사이에서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그 아버지 하밀카르의 별명인 바르카를 붙여 구분했던 것이다. * [[코끼리]] 이미지로 유명해진 장군이지만 실제로 한니발이 코끼리를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패배했던 [[자마 전투]]뿐이다. 한니발이 [[아프리카]]에서 끌고온 코끼리는 [[알프스 산맥]]을 넘으면서 상당수 죽어 [[이탈리아]] 본토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력외가 되어 있었고, 그나마도 최초의 회전인 [[트레비아 전투]]에서 전열을 완전히 이탈해버렸다. 오히려 한니발은 [[기병]]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편이며, [[칸나이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정 당시 한니발군이 운용한 [[전투 코끼리]] 37마리 중 대부분은 지금은 멸종하고 없는 [[북아프리카]] 숲 코끼리로, 스키피오가 칼로 찔러 죽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크기가 작게 진화한 종이었다.[* [[사하라 사막]]이 형성되면서 [[북아프리카]]의 코끼리들은 남쪽의 동족들과 교류가 단절되었다. 즉, 생태학적으로 섬에 자리잡은 것이다. 포유류는 조류와 달리 섬에 들어간 동물들이 일반적으로 [[섬 왜소화|왜소화되는 경향이 있다.]]] '''수루스'''라는 이름이 붙은 한니발의 승용 코끼리는 다른 코끼리들보다 훨씬 체격도 크고 힘도 셌는데, 학자들은 [[인도 코끼리]]로 추정한다. 수루스는 [[수컷]]이었고 주인을 닮아 [[애꾸눈]]에 한쪽 [[상아]]가 없었다. 수루스는 트레비아 전투 이후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코끼리였다고 한다. 다른 코끼리들은 알프스를 넘으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 하고 고생한 탓에 모두 그 전투 이후 폐사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uoregon.edu/hannibal_coin.jpg|width=100%]]}}} || 흔히 [[로마]] 동전에 그려진 이미지가 떠돌지만 그것은 후대의 상상화이며, 실제로는 [[흑인]]이었고 어떤 초상도 남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한니발은 [[흑인]]이 절대로 아니다.''' 카르타고는 엄연히 [[페니키아]]인들의 국가였고, 한니발은 [[순혈주의]]를 고수하던 카르타고 [[귀족]]이다.[* 단, 한니발의 아내는 [[이베리아]] 원주민 족장의 딸이었으며, 그 사이에 아들도 한 명 있었다고 한 걸로 보면 한니발 본인은 [[순혈주의]]를 고수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더불어 이탈리아에서 한니발 [[무쌍]]을 시전하던 동안 여자를 가까이 한 적도 없다고 한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카르타고는 카르타고 적자와 혼혈 서자 간 차별이 존재했다.] 현재 [[쾰른]] 박물관에 있는 주화 중에 한니발로 추정되는 인물의 주화가 있는데, 흑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지금의 북아프리카 사람들이나 유목민들의 주축을 차지하는 인종은 흑인이 아니고[* 북아프리카의 원주민은 [[베르베르인]]이고 현대의 아랍인들은 아랍화된 베르베르인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론 전부 백인에 속한다.] 카르타고인의 조상 격인 페니키아인들은 현재 [[레바논]] 일대에 살았다. 이들의 후손들은 대개 현대의 [[아랍인]]에 동화된 데다가, 현대의 레바논인들과 [[튀니지]]인들은 아랍인으로 분류되기는 하나 애초에 북아프리카와 [[레반트]] 일대의 아랍인들은 외형적으로 남유럽 백인과 큰 차이가 없어 백인으로 본다. 흑인이나 [[흑백혼혈]]에 가까운 스테레오타입을 가진 아랍인들은 대다수가 북아프리카와 중남부 아프리카의 경계에 거주하며, [[이집트]] 남부와 [[수단 공화국]]에 거주하는 [[누비아]]계 아랍인이 대표적이다. [[히스토리 채널]]에서 제작한 다큐 드라마 [[바바리안 라이징]]에도 한니발이 흑인으로 나오는 고증 문제가 있다. * 여담으로 후대에 [[흑인]]인 한니발이 실제로 있었다. '''[[아브람 페트로비치 간니발]]'''[* [[한니발]]에서 이름을 따왔다.]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흑인 [[노예]] 출신이라 자세한 출신지는 불명이지만 보통 [[차드호]] 근처가 고향이라 비정한다. [[러시아]]의 [[표트르 1세]]에게 등용되어 장군이 되었는데, 이 사람의 후손 중 한 명이 [[알렉산드르 푸시킨]]으로 푸시킨이 전기를 쓰기도 했다. 이름이 같고 '''아프리카 출신 장군'''이라는 점 때문에 혼동해서 퍼뜨린 사람도 있을 수 있다. * 알프스에서 바위로 길이 막히자 [[식초]]로 녹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불로 달군 다음 찬 식초를 부어 쪼갰다는 말이 오역되어서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물론 당시 병사들이 식수 대신 식초를 들고 다니기도 했다고는 하지만, 바위가 식초에 녹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식초를 부어서 바위의 강도를 약화시킨 후에 바위를 부쉈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 한니발이 [[셀레우코스 제국]]에 있었을 때, 포르미오라는 그리스 [[철학자]]의 강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포르미오는 '''장군의 의무'''라는 주제로 강의하였다고 한다. 강의를 한 뒤 포르미오가 한니발에게 의견을 물었고 이때 한니발은 "내 생애 많은 어리석은 노인들을 만나왔는데 이 자는 그들 모두를 능가하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실제로 전쟁이 무엇인지 겪어보지도 않은 채 [[탁상공론]]이나 하는 그리스 학자의 강의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특히 실전 경험이 많은 한니발이었던 만큼 [[백면서생]]들의 미련하고 실속 없는 태도가 더욱 불만이었을 것이다. 원래 [[페니키아]] 문화가 [[그리스]] 문화와는 달리 [[시]]나 [[철학]]보다는 농장 경영 같은 실용 학문을 중시한 것도 한 가지 원인이 아닌가 싶다. 재미있는 점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당대 로마에서 대표적인 그리스 애호가였다는 사실이다. * 한니발이 죽기 전에 한 말은 "로마인들을 그들의 가장 큰 염려에서 해방시킬 때가 되었군. 그들은 이 노인의 죽음을 그토록 고대해 왔으니."이거나 "아! [[카르타고]]여! 나를 용서해다오!"라고 한다. * [[튀니지]] 독립 이후에 튀니지는 카르타고가 자국 영토에 있다면서 한니발을 튀니지의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과거 여러 차례 튀니지 5 디나르 지폐 도안으로 쓰였었으며 튀니지 최대 방송국 이름이 Hannibal-TV라는 점 등에서 보이듯 튀니지 사람들은 한니발을 대단히 존경한다. 비무슬림의 이름이지만 이름으로도 많이 쓰이고 이웃 북아프리카의 나라인 [[리비아]]에서도 멋진 영웅이라고 하여 이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리비아의 전 독재자인 [[카다피]]의 5남 이름 역시 한니발이다. [[레바논]]에서는 페니키아는 레바논의 조상이라면서 이런 튀니지를 코웃음친다.[* 다만, 카르타고인에는 이주해온 페니키아인들과 토착민인 [[베르베르인]]들이 같이 포함되고 둘의 혼혈 역시 많이 이루어졌다. 카르타고인들은 카르타고가 망한 이후에도 계속 튀니지에 대를 이어 거주해서 현대 튀니지인들의 조상이긴 하다. 어떻게 보면 [[페니키아|같은 조상]]을 가진 튀니지인들을 [[레바논인]]들이 오해한 거라고도 할 수 있다.] 참고로 한니발이 묻혔다고 추정되는 무덤이 현재 [[튀르키예]]에 있는데[* 제2 대도시인 [[이스탄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단, 이 무덤도 한니발이 묻혔다고 추측만 할 뿐 확실하지는 않다.] 튀니지 측에서 한니발의 시신을 양도할 것을 요구한 적도 있다. 물론 튀르키예 정부에서는 이를 무시했다. * [[로마인]]들이 보기에도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심지어 로마에서도 '''[[한니발]]'''은 인명으로 쓰였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조카의 이름이 한니발리아누스(Hannibalianus)였다. 콘스탄티누스의 후계 구도에 조카인 이 사람도 있었으나, 아들 3형제가 우리끼리 해먹자면서 콘스탄티누스 대제 사후, 아버지의 이복형제들인 삼촌들과 그들의 아들인 이 한니발리아누스를 포함한 사촌들 전부를 죽였다. 예외로 살려둔 이가 아주 어렸던 [[율리아누스]]와 그 형제였다. 현대 이탈리아어에서는 안니발레(Annibale)라고 하는데, [[성인(기독교)|천주교 성인]]으로 시성된 이 중에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차(Annibale Maria di Francia)' ^^(1851년 ~ 1927년)^^란 신부도 있다. 천주교 성직자요 성인으로 시성된 사람의 이름이 '''[[바알]]의 은총'''이라니, 참으로 얄궂은 일이라 하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